천방산은 서천군 판교면, 문산면, 시초면등 3개면에 걸칠만큼 산자락이 넓고 큰 서천 제일의 산이다. 산이 험하지 않아 누구든지 오를 수 있으며, 천방산은 동서남 방향으로 7개의 봉우리가 둘러쳐져있고 동남북방향이 훤히 트여 시원한 풍광을 자랑하는 영산(靈山)이다. 좌청룡 우백호인 듯 천방산 정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서 있는 봉우리들은 남으로 가면서 5개의 봉우리를 더하며 마치 병풍인 듯 둘러쳐진 모습이 있어 아늑한 감이 있는 천방산은 서북에서동북방향(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펼쳐진 시원한 풍광이 함께하고 있어 좋은 곳이다. 천방산은 산이름과 관련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천방산의 전설은 백제말기 소정방이 백제를 치기 위해 기벌포(현재의 서천군 장항읍)에 진입하면서 시작되는데 멀쩡했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며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소정방은 풍랑이 자기를 기다렸으나 풍랑은 좀처럼 그칠줄을 몰랐다. 그 때 그들의 앞을 어느 도승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소정방은 너무 답답하던 참이라 그를 붙들고 그곳의 지세를 물어보았다. "도승 이곳은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우리들이 이곳에 오자마자 이렇게 풍랑이 심하오?" 도승은 소정방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길이 험한 곳이오. 다른 곳에 비할 바가 아니오. 더구나 멀리서 원정군로서는 이곳을 통과하기가 어려우니 이 산에 하룻저녁에 천 칸의 집을 짓고 천일제를 지내어 산신의 보호를 받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개선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소." , "그렇다면 우리 군사가 무사하겠소?" , "그렇소이다." 도승의 확답을 듣고 소정방은 군사들을 시켜 단번에 천 칸의 방이 있는 큰집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군사들은 정신없이 소정방의 말에 따라 집을 지었다. 소정방은 그날 저녁으로 제사를 지내고 군대가 무사히 부여에 입성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후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튿날 날씨가 씻은 듯이 개이고 풍랑도 가라 앉았다. 소정방은 군사를 이끌고 사비성으로 진격하여 백제군을 꺾고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 소정방이 지은 천칸의 집은 절이 되어 천방사라고 하였으며 산 이름도 이 때부터 천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소정방이 남겨 놓은 천방사는 사찰로서 조선시대까지 존속되어 오다 1664년에 승려들의 반란으로 불타버렸고 천방사(千房寺)는 다시 중건하지 못하게 되었다. 현재는 은적사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을 뿐 대찰의 영화는 간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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